오페라 연출가, 키워야 할까 기다려야 할까

송현민의 CULTURE CODE

기사 업데이트 시간: 2015년 8월 1일 12:00 오전

오페라 전문 연출가의 탄생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연출가 | 각본을 바탕으로 연기·무대장치·의상·분장·조명·음악 등의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하여 효과적으로 공연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 ‘양촌리 러브 스캔들’의 무대. 가장 오른쪽이 연출가 정선영

드라마 ‘전원일기’의 세트를 고스란히 옮겨놓은 듯한 무대. 시골 풍경 사진을 인화하여 판에 붙인 세트에선 제작비를 절약한 티가 팍팍 난다. 그 극단의 디테일은 일제히 극단의 촌스러움을 향해 세공된 듯하다. 7월 6·7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 오른 오페라 ‘양촌리 러브 스캔들’의 무대다. 제목으로 보아선 창작 오페라 같다. 하지만 이 작품은 도니제티의 ‘사랑의 묘약’을 양촌리 버전으로 바꾼 것이다. 연출은 정선영이 맡았다.

원작에 등장하는 청년 네모리노는 아디나를 사랑한다. ‘양촌리 러브 스캔들’의 네모리노는 곱슬머리에 시골색이 완연한 상의와 방금 전 논에서 나온 듯 흙이 묻은 장화를 신고 있다. 그리고 동네 슈퍼마켓의 아가씨로 설정된 아디나를 사랑한다. 네모리노에게 묘약이라며 사기를 치는 둘카마라는 괴짜 도사로 나온다. 대사는 원어를 썼지만 친근한 구어체 말투로 자막을 띄웠다.

양촌리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대놓고 ‘촌’임을 느끼게 하는 제목과 무대의 시골 풍경은 ‘시골=순박’의 이미지를 더하여 네모리노의 사랑에 순수함을 더해주는 맥거핀으로 기능했다. 도니제티의 뼈와 정선영의 살이 ‘양촌리 러브 스캔들’의 몸체를 만든 무대. 귀에는 사랑의 ‘묘약’이, 무대에는 ‘농약’이, 객석에는 ‘마약’ 같은 웃음이 퍼진 시간이었다.

새로운 오페라=연출가

국내에서 오페라를 음악 위주로 감상하던 시대를 벗어나 연출의 중요성을 실감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다. 국립오페라단은 정기 공연과는 별개로 소극장에 실험적 성격이 강한 작품들을 올렸다. 오페라 연출의 풍운아였던 문호근은 메노티의 ‘무당’과 ‘전화’를 공연했다. 연극연출가의 유입도 활발했다. 1983년 9월, 소극장에 올린 박재열의 창작 오페라 ‘초분’은 연극을 오페라로 재창작했다는 것 외에도 원작자인 오태석이 연출을 맡아 화제였다. ‘새로운 오페라=연출가’라는 등식이 성립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오페라는 몇 회의 공연으로 수익을 내야 했기에 실험보다는 검증된 상업성이 필요했다. 당시에 국내에는 실험적인 연출가들도 별로 없었다. 주요 공연의 키를 잡은 이들은 대부분 해외 연출가들이었다. 음악대학에선 성악가들의 배출에만 열을 올렸다. 보고 들을 거리가 총체화된 ‘종합’예술이 오페라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 땅의 오페라는 오로지 ‘청각’ 예술이었다. 당연히 현장에선 연출가 기근이 심해졌고, 해외 수입(?)을 통해 이를 대체했다.

‘양촌리 러브 스캔들’은 무대는 작아도 연출가의 끼가 팽팽히 들어 있는 작품이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연출가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러한 오페라 전문 연출가도 몇 명 없고, 이를 전문적으로 육성·지원하는 풍토도 없다. 그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 둘카마라 역의 바리톤 한진만(왼쪽)과 네모리노 역의 테너 정능화(가운데)

큰 정책보다 작은 움직임이 필요하다

(1) 오페라 연출가를 묶을 수 있는 문화적 장치가 필요하다. 2014년 오페라연출가포럼이 창립됐지만, 이들이 무엇을 할지는 아직 미지수다. 서울시오페라단의 세종카메라타는 그간 극작가와 작곡가를 인큐베이팅하며 창작 오페라를 위한 전초전을 펼쳐왔다. 거기에 소속된 극작가 고재귀·고연옥·박춘근·배삼식과 작곡가 최우정·신동일·임준희·황호준은 짝을 지어 2013년에 4편의 창작 오페라를 리딩 공연으로 세종체임버홀(443석)에서 선보였고, 이 중 최종 선정된 ‘달이 물로 걸어오듯’은 수정·보완을 거쳐 2014년에 세종M씨어터(609석)에 올라 호평을 받았다. 지금까지 창작 오페라전을 선보여온 세종카메라타가 앞으로는 3~4명의 연출가를 선발하여 기존 작품을 연출가 중심적으로 번안·개작·변형해보는 실험실로서 지원을 해보면 어떠할까.

(2) 1994년 이윤택·기국서·채승훈 등으로 출범한 ‘혜화동 1번지’는 그간 박근형·김광보·양정웅·이해제 등 젊은 연출가를 줄줄이 배출하는 데뷔전을 꾸려왔다. 오페라에도 이와 같은 연출가 데뷔전이 필요하다. 욕심 낼 필요는 없다. 4~5명의 연출가가 자신의 연출 색을 드러낼 수 있는 작품을 택하여 막과 장을 발췌하여 짧게 선보이는 옴니버스 형식이면 된다. 무대 구현이 어려운 장은 영상이나 서울시오페라단 ‘오페라 마티네’처럼 해설자의 해설과 구연(口演)에 맡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3) 오페라 연출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수 있는 교육기관이 없다. 현재 오페라 연출 전공이 있는 학과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의 전문사 과정(대학원)뿐. 그들은 현장에 가도 자신이 활약할 극장 시스템을 새롭게 체득해야 한다. 국·공립단체인 국립오페라단이나 서울시오페라단은 공연 외에도 연출가를 위한 ‘교육’적 책임을 지닌 ‘현장’이다. 따라서 부설 아카데미를 개설·연계하여 실전 경험을 체득하게 해야 한다.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오페라연구소 같은 기관도 예외일 수 없다.

(4) 음악대학의 변화도 필요하다. 성악 전공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마음 맞는 학우들과 오페라‘단’이 아닌 오페라 ‘앙상블’을 만들어 활동할 수 있는 학업 분위기와 이를 위한 워크숍, 그리고 그 과정을 코디하며 연출가로 성장할 수 있는 지망생을 발굴해야 한다.

‘양촌리 러브 스캔들’을 연출한 정선영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후, 미국에서 오페라 연출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공연예술창작소 ‘예술은 감자다’를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 ‘정선영표 오페라 스캔들’을 많이 일으켜 오페라 연출가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작품을 꾸준히 선보였으면 한다.

사진 예술은 감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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